당신이 무어라 해도 나는 나대로 한다
편협과 억지, 좋은 말로 공감의 휴가 진검승부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개는 멍청하다’고 심한 소리를 합니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 중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죠. ‘고양이는 자기밖에 모른다’고 공격합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사이에도 높은 산이 있고 넓은 바다가 있습니다. 그 차이뿐일까요. 누구는 캐리어만을 고집하고 누구는 그런 건 ‘개나 주라’고 합니다(그럼 고양이 편?). 북적이는 성수기에 휴가를 가야 휴가 갔다 온 듯하다는 사람도 있고 그런 과정이 지긋지긋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1년 전부터 계획을 짜는 사람이 있고, 전날까지도 비행기표 확보에 유유자적인 사람이 있습니다. ‘계획인간’이 보기에 답답하고, ‘무계획인간’이 보기에 아등바등입니다. ‘여행 대격돌’에서 개와 고양이가 싸움을 벌였습니다. 압니다. 사실은 세상에 중간이 훨씬 많습니다. 편을 나눠서 ‘억지’를 부려보았습니다. 여행 갈 땐 ‘억지’는 내려놓고 가세요. _편집자
앞서가기 VS 따라가기
꺼져, 이건 내 여행이야
여행지에서 현지인 친구를 만난다. 물론 반갑다. 잠자리를 제공해주고, 멋진 한 끼 베풀어주고, 숨겨진 보물을 알려주고… 좋다. 거기까지다. 만약 그 친구가 새벽부터 설레발을 치며 하루 종일 나를 안내하겠다며 가이드 모드로 나선다면, 내 입에선 이 말이 튀어나올 것이다. “꺼져. 이건 내 여행이야.”
패키지냐 독립여행이냐, 이런 물음이 아니다. 아무리 독립이라도 그룹으로 움직인다면, 그 여행의 설계는 내가 한다. 독재를 하겠다는 게 아니다. 함께 가는 사람들의 취향과 체력, 현지의 디테일한 정보, 이동 경로의 여러 변수…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계획을 짠다. 일행에게 복수의 안을 브리핑하고 결제를 받은 뒤 실행한다.
완벽한 계획에 따라 움직이겠다는 것도 아니다. 여행이란 돌발 변수와 사고의 연속이다. 그 상황에서 즉흥적으로 새로운 판을 짜고 최적의 해결책을 찾아내는 일. 나는 거기에서 쾌감을 느낀다. 그런데 누군가 내가 탄 배의 키를 자신이 움직이겠다고 나서면, 그 긴장이 확 무너져버린다. 그것은 내게 절반의 여행일 뿐이다.
이명석 문화평론가
나는야 ‘젖은 낙엽 여행가’
지난 한 달간 미국 대륙을 돌며 꽉찬 두 권의 여행노트를 썼다. 온갖 곳의 자료 스크랩과 풍경 스케치까지 곁들인 제법 그럴듯한 노트다. 돌아온 뒤, 1년6개월 동안 세계일주를 하고 온 친구를 만났다. 그런데 그림 그린다는 사람이 여행노트가 달랑 한 권 반이다. 여행 루트를 짜고 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찾는 온갖 실무를 하다 보니 쓰거나 그릴 시간이 없었다는 변명 아닌 변명. 그런데 난 어떻게 쓸 수 있었느냐고? 당연히, 실무를 내가 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나는 공식 ‘젖은 낙엽 여행가’다. 내 여행 방법은 여행 동료에게 젖은 낙엽처럼 딱 달라붙어 다니는 것. 동료가 계획을 짜고 표를 예약하고 숙소를 선정하는 동안 나는 산책을 하고 풍경을 즐기고 노트를 쓴다. ‘신선놀음’이다. 의사소통하느라 쩔쩔맬 필요도 없다. 계획이 어긋나서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감탄하고 향유하기만 하면 된다.
물론 젖은 낙엽 여행가에게도 소양이 필요하다. 취향이 같은 여행 동료를 찾아낼 것. 원하는 바가 확실할 것. 살짝 비굴할 것. 그 모든 조건만 충족되면 이보다 더 편할 수는 없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내 요구를 관철하는 적당한 ‘밀땅’이 필요하다는 것. 그게 없으면 깃발 졸졸 따라다니는 무미건조한 패키지여행과 다를 바 없을 테니까.
박사 자유기고가
계획 VS 무계획
숙소에서 멍 때린다’도 계획하에
계획을 짜는 이유? 소심한 A형이라서 그런가. 어쨌든 계획을 짜면 휴가 내내 편하다. 계획대로 즐기면 그만이다. 어떻게 얻은 휴가인데 허투루 보낸단 말인가. 계획을 짜는 것 자체도 즐겁다. 뭐할까 어디 갈까 궁리하다 보면, 벌써 휴가를 떠난 기분이다.
계획적인 휴가는 왠지 ‘휴’하는 것 같지 않다고? 내게 ‘허투루’는,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다. 그래서 ‘숙소에서 멍 때린다’도 계획이 된다. 첫날 먼 거리 이동에 피곤한 점을 고려해 둘쨋날은 ‘오전 휴식, 오후 등산’ 식으로 계획을 짠다. 무계획한 이들, 즉 네가 다 알아서 하라든가, 되는 대로 하면 되지, 이러면서 남이 짜놓은 계획에 무임승차한 사람들은 휴가지에서 반드시 불만을 늘어놓는다.
사실 내 계획은 허술한 편이다. 하루 한두 가지 프로그램을 정하는 정도다. ‘우천시 일정’을 따로 마련해둘 만큼만 치밀하다. 시간대별 일정은 물론, 세끼 메뉴까지 엑셀파일로 만들어 실천하고야 마는 친오빠(별명이 ‘이 가이드’)에 견주면 비계획적이다. 열심히 계획을 짜고 갔는데 강원도의 한 계곡 입구에서 망연자실한 적도 있다. 전해 여름 태풍에 박살나 복구공사가 그때까지 진행 중이었다. 인생이 뭐 늘 계획대로 되던가.
이지은 기자
여행지의 무궁무진함을 믿으라
무계획이 상팔자다. 교통편과 숙박만 확실하다면 나머지는 여행지가 알아서 코스를 펼쳐주리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계획에 몰두해 미리 보고 듣는 게 많아지면 감흥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여기가 유명한 거기라며’ ‘여기가 맛있는 집이래’ 하며 확인하는 절차밖에 더 되겠는가. 게으른 여행자에겐 얻어 걸리는 것도 많다. 무작정 차를 타고 도착한 경주에서는 싸고 맛있는 한정식집을 ‘득템’했고, 여행객이 사라진 한적한 밤 오스트레일리아의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뒤에서는 뜻밖의 불꽃놀이가 오로지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펑펑 터졌다. 딱 한 번 계획을 세우고 출발한 적이 있다. 친구들과 떠났던 인도 배낭여행. 그러나 우리는 여행 닷새 만에 계획을 산산조각냈다. 대신, 일정에 없던 아름다운 소도시에서 보석 같은 시간을 보냈다. 다른 여행자가 계획대로 움직이고 있을 때 그들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발견했다. 신혼여행도 비행기, 잘 곳 딱 두 가지만 정하고 출발했는데 웬 계획? 변수에 대비해 계획을 세운다지만 계획은 그 변수에 깨지라고 있는 거다. 어차피 깨질 것 바쁜 와중에 뭐하러? 뜻밖의 즐거움을 주는 여행지의 무궁무진함을 믿고 그냥 출발해보시라.
신소윤 기자
무대책 해외 캠핑 VS 호텔
호텔 없다고 길바닥에서 자랴
두 달 전, 2주간의 유럽여행 마지막 코스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향해 프랑스 니스발 13만원짜리 이지젯에 올랐다. 4명은 되리라 봤던 일행이 2명으로 줄어든 터라 숙박 예약을 하지 않기 잘했다, 고 착각했다. 중앙역 앞의 관광안내센터는 사람들로 들끓었다. 대기표를 받고 상담에 들어가기까지 1시간여. 20만원 이상이 아니고는 묵을 수 있는 호텔이 없었다. 배낭여행 전문인 후배는 걱정 말라며 앞장서 거리로 나섰다. 캐리어를 끌고 1시간 넘게 걸으며 호텔을 뒤졌으나 빈방은 없었다. 여행의 끝물, 피로감이 들끓기 시작했다. 마침 자전거 대여점이 눈에 띄었다. 짐을 맡기고 1만원에 4시간을 빌렸다. ‘자전거의 도시’란 명성에 어울리게 그 복잡한 시내에서 씽씽 달리는 게 가능했다. 관광을 겸한 호텔 구하기에 마침내 성공했다. 12인 도미토리에 1인당 8만원. 가격도 셌지만 나신에 가까운 금발의 미남·미녀에 둘러싸인 잠자리는 즐겁다기보다 고통에 가까웠다.
다음날 아침, 후배에게 캠핑을 제안했다. 후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캠핑요?” 지난해 여름, 미국 그랜드캐니언의 기억을 들려줬다. “그때도 아무 장비 없었어. 다행히 일행이 캠핑장 예약은 해두었고. 딱 하나 있는 마트에서 콜맨 텐트를 하루 10달러에 대여받아 아주 잘 썼어. 여긴 유럽이니 더 좋을 거야.”
관광안내센터에서 암스테르담 주변의 캠핑장 서너 곳을 추천받은 뒤 중앙역에서 버스로 10분 거리인 곳을 찾아갔다. 불행히도 텐트도, 침낭도 대여는 없었다. 구매만 가능했다. 텐트를 구입하느니 하루 10만원짜리 4인용 오두막을 빌렸고, 2만5천원짜리 침낭을 샀다. 냄비 하나를 더 사서 커피, 스파게티, 라면, 바비큐를 돌려가며 해먹었다. 여행 피로를 날려준 3일간의 숲 속 캠핑! 이제 다음은 어느 나라에서 캠핑을 해볼까나~.
이성욱 씨네21북스 편집장
랜드마크 관광 VS 독자 관광
이효리가 십수 년째 톱스타인 이유
맞다. 프랑스 파리는 에펠탑이 아니어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19세기에 지은 집들은 아름답고, 동네 재래시장에서는 사람 냄새가 물씬 난다. 뒷골목을 헤매고 작은 카페에 들어가 파리지앵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도 ‘진짜 파리’를 만나는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역시 에펠탑이 빠지면 섭섭하다. 고철덩어리일 뿐이라고? 날렵하고 뾰족한 곡선의 에펠탑과 낮고 무거운 파리 건축물들이 이루는 인상적인 대비를 음미해보셨나. 아침엔 이 ‘고철덩어리’ 다리 밑으로 태양이 떠오르는데, 일출의 신비에 하늘과 에펠탑이 동시에 반응하는 모습은 위대한 예술작품 이상의 감동을 준다. 매일 밤 수만 개 전구가 축제처럼 반짝거릴 땐 ‘고철덩어리’가 마치 ‘당신도 오늘 이렇게 빛났어요’라고 속삭이는 듯하다.
에펠탑과 루브르박물관이 파리의 절정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효리가 십수 년째 톱스타인 이유가 있듯, 이들이 세기를 넘어 ‘스타 여행지’로 군림하는 이유도 분명히 있다. 명소는 긴 시간의 역사와 문화가 응축된 보물섬이다. 눈과 귀와 감수성을 연다면 분명 ‘미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걸 발견하는 건 여행자의 몫이다. 부디 ‘명소 찍기 여행’에 대한 반발로 명소까지 거부하지는 말기를.
김현정 프리랜서 작가
대체 대영박물관에서 뭘 할 수 있을까
영국 런던에 다섯 번 갔지만 한 번도 대영박물관과 웨스트민스터사원을 간 적이 없다. 그곳에 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 있을까? 가이드북에 있는 건물과 전시물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는 것? 대신 나는 그 지역 지도를 산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는 종류와 다른 멋진 여행지도, 탐험가의 호기심을 부르는 대축적 지도들. 지도서점이 없으면 여행서점에 들르고, 그도 없다면 그 도시인들이 가장 많이 가는 서점을 찾는다. 동물원도 꼭 들르는 목록 중 하나다. 전세계 동물원 비교가 내 여행의 연구과제 중 하나다.
런던에서 3곳의 멋진 여행서점을 만났다. 말리본의 돈트 북스는 런던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에드워드 왕조풍의 서가라는데, 1층에 중앙홀이 있고 2층에 테라스 형식의 서가에 책이 꽂혀 있다. 여행 마니아라면 코벤트가든의 스탠퍼드 서점에 이르러 눈이 휘둥그레질 것이다. 3개 층이 모두 지도와 가이드북, 여행문학으로 채워져 있다. 런던 좌파의 역사를 보려면 세인트팬크라스역 주변의 하우스만스에 가보라. 자칭 ‘런던의 프리미엄급 래디컬 서점’인 이곳은 멕시코 사파티스타의 원두커피를 팔고, 각종 정치단체의 팸플릿으로 벽면을 채웠다. 미국 시애틀의 ‘레프트뱅크’와 자웅을 겨루는 세계적인 사회과학 서점이다.
대영박물관과 웨스터민스터는 언제 갈 거냐고? 나에게 런던 출장이 열흘 정도 주어져 사나흘 이상 할 일이 없는 날이 도래한다면, 슬리퍼 끌고 마실 가듯 한번 다녀오겠다.
남종영 기자 한겨레 토요판
캐리어 VS 배낭
우리 아이의 허리 건강을 위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가 ‘사서 고생’하는 행위다. 텐트·코펠·버너 등 캠핑장비를 배낭에 때려넣고, 그걸 등에 멘 채, 게다가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한여름 뙤약볕의 일본 대마도를 2박3일간 일주하자니, 제정신인가. ‘대마도 정벌계획’인지 ‘대마도 여행계획’인지 모를 그 녀석의 ‘무리수’에 단 한마디로 맞섰다. “너 그러다가 일본에서 변사체 된다.”
여행이란 무엇인가. 바쁜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평소 느끼지 못한 여유와 휴식을 얻으려는 것 아닌가. 그런데 배낭이 웬 말인가. 배낭을 멘 여행에 ‘개고생’과 궁핍함이 따른다면, 캐리어와 함께하는 여행에는 사색과 여유가 있다. 당연히 여행용 캐리어라야 한다.
사실 가까운 초등학교 근처만 가도, 대세는 캐리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학생용 배낭, 곧 책가방의 시대는 저물고 형형색색의 학생용 캐리어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지 않은가. 학생용 캐리어 제조업체 ○○사는 이렇게 말한다. “최근 초등학생의 척추측만증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이유는 무거운 책가방에 있습니다. 우리 아이의 소중한 허리 건강, ○○이 지켜줍니다.”
최성진 기자 한겨레 토요판
캐리어는 채워지고 배낭은 게워진다
잘 다려진 7부 바지를 입지, 새하양 셔츠에 단추 두 개는 풀어, 위로 헌팅캡을, 밑으론 로퍼가 제격이지, 왼손으로 은빛 캐리어를 쥐고 오른손 들어 선글라스 저 너머로 내다보는 거야, 그래 떠나는 거니까, 미지의 여인은 내가 다 찾으리라, 레츠고 하는데 대한민국 보도블럭 위 나선지 10분 만에 캐리어 바퀴가 톡 빠져. 바퀴는 나뒹굴고 삐걱춤을 추는 캐리어는, 단추 하나 더 풀고 헌팅캡 돌려쓴 뒤 결국 등짝에 짊어매지.
2000년 첫 해외여행길에 캐리어 바퀴 한쪽이 작살났다. 마법처럼. 부실한 삼손 같으니라구. ‘위따위’로 차려입진 않았지만 결국 난 ‘짐짝’을 들고 거품물며 대서양을 건너야 했다.
캐리어 여행은 거처가 동선을 낳지만, 배낭 여행은 동선이 거처를 품는다. 캐리어는 거처에서 채워지나, 배낭은 동선에서 게워진다. 되레 나이드니 배낭멜 일이 많다. 수도권 산에선 15ℓ를, 지리산 종주할 때 60ℓ를 멘다. 내 성격처럼 용량이 우유부단해 웬만한 여행에선 25ℓ가 다 맞다. 두 달 전 땅끝 미황사에 나흘 머물렀는데, 25ℓ에 근심이란 근심까지 죄다 담기 충분했다. 그리고선 온전히 나의 보폭으로 그것들의 감량을 달성하고 체감하는 맛! 올 휴가 때도 25ℓ로 바다를 건너려 한다. 다만 꾸역꾸역 캐리어 끌고 동행하겠다는 이 있으니 걱정이다. 배낭 속에 캐리어를 담겠다는 계산인 겐지.
임인택 기자 한겨레 사회부
연인여행 VS 혼자여행
혼자 떠난다면 사랑하지 않는 중이다
“우리 여행 갈래?” 인생에서 가장 강렬한 순간을 꼽으라면 그때다. 대학 신입생 시절 한 여름밤 대학 캠퍼스를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가 툭 던진 그 말. “좋아.” 망설여지지가 않았다. 처음으로 손 꼭 잡고 강원도 춘천으로 떠났다. 연인이 되고서도, 영화보다는 여행을 즐겼다.
그때부터다. 여행을 떠나는 내 옆자리엔 늘 그가 있다. 물론 ‘그’는 몇 번 바뀌지만. 여행은 행복해지려고 떠난다. 행복은 연인과 나누고 싶다. 여행은 위안을 얻으려고도 간다. 연인은 큰 위안을 준다. 혼자 떠나고 싶다면 사랑하지 않는 중이다!
뇌로만 따져봐도 결론은 같다. 나는 귀차니스트다. 계획을 못 짠다. 연인은 든든한 여행 플래너이자 내비게이션이다. 가끔은 노래도 불러주고, 개그도 해주고, 시도 읊어주는. 식도락 여행을 위해서도 연인은 필요하다. 혼자선 한정식도, 한우도, 회도, 조개구이도, 오리탕도 엄두가 안 난다. 그리고 이 모든 게 ‘반땡’으로 가능하다는 사실.
연인이 없는 사람은 여행도 못 가냐고? 반문하실 분, 있겠다. 그건 나도 모르겠다. 없어본 적 없어서. 여행을 위해서라도 우리 모두 끊임없이 사랑하며 살자는!
ㅅ기자
사랑은 엽서로 하세요
결혼하고 나서 나의 여행은 시작됐다. 20대 후반의 연애는 붕 뜬 비행기처럼 신나는 경험이었건만 연인 박군은 실제로도 나를 ‘비행기 태워줬다’. 최초의 해외여행이자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여행병’에 걸린 나는, 사실상 반백수인 프리랜서라는 직업과 박군의 응원을 좌우 날개 삼아 1년에 한두 번씩 2주에서 40일에 이르는 여행을 다녀왔다. 물론 혼자.
여행까지 와서 연애질이라니, 오호통재라! 혼자서는 가고 싶은 데 가고 마음에 드는 데서 얼마든지 머물 수 있다. 동행을 의식할 필요도, 싸우다가 “그 인간의 밑바닥을 봤어요” 하고 울 필요도 없다. 그런 낭비는 이제 접으시라. 시간과 체력과 비용이 아깝다.
혼자면 내 힘으로 뭐든 해야 하고, 그러나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며, 아이처럼 타인에게 도움받는 법도 배우게 된다. 세상은 결국 혼자 살아간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는 진실을 체험한다. 사람들과 대화할 기회도 많이 생기며 이는 뿌듯한 추억으로 저장된다. 불쌍한 커플족이여, 이 모든 걸 포기할 텐가!
그럼 사랑은? 엽서로 한다. 나는 매일 박군에게 그날의 감흥을 담아 엽서를 쓴다. 떨어져 있는 내내 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새록새록 되새기게 된다. 결혼 6년차가 말하노니 지금보다 더 달콤한 사랑을 꿈꾼다면 혼자 여행하시라. 어쩌면 당신의 짝꿍도 좋아할 것이다.
김현정 프리랜서 작가
알코올 VS 무알코올
주폭에 쫄지 마라
말이 필요 없다. 노상 마시는 거다. 오바이트 나오는 도시를 떠나 술을 부르는 피서지에서 술 안 먹고 뭐하려고 하는가? 처음 보는 이성과 짜릿한 급만남을 가지려는가? 그렇다면 더욱 마셔야 한다. 술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미디어니까. 물론 그러다 술만 남고 이성은 떠나는 사태가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건 너님이 못나서 그런 거다. 술이 무슨 죄인가. 술을 멀리해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겠다고? 술 속에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었던 너님이 이제 와서 그 버릇을 개 주겠다고? 아서라~. 술도 못 먹고 안식도 못 얻는 수가 있다. 그냥 마시던 대로 마셔라. 인생 뭐 있냐, 마시는 게 남는 거다. 마시다 보면 여름휴가도 지나가 있고, 크리스마스도 지나가 있고, 술 먹고 있는 자기 자신만 남는 실존적이고 철학적인 경험도 하게 된다. 주폭이다 뭐다, 까불고들 있는데 쫄지 마라. 고소당하지 않을 만큼만 마시면 된다. 고소하는 인간과는 다음에 안 마시면 된다. 마음껏 놀기 위해 지난 1년, 꾸역꾸역 밥을 벌지 않았나. 기다리고 기다린 여름휴가, 그대들은 알코올 속에서 살아 있으라. 싫음 말고.
X기자의 ‘와잎’
옆방 꽝꽝 두드리려고?
내 별명은 주모다. 술꾼이라는 소리다. 오죽하면 술집을 소개하는 책도 냈겠는가! 어깨춤 덩실덩실 추게 하는 알코올은 빡빡한 세상을 헤쳐나가는 탈출구다. 예전에 한 여자 선배가 밥보다, 야밤 남자와의 ‘사랑’보다 술이 더 좋다고 했다. 맞다.
하지만 1년에 딱 한 번 그 해방구를 씹다 버리는 껌 취급하는 날이 있다. 휴가철이다. 왜? 첫째, 휴가지 공기는 마음에 안 든다. 낯설다. 온 세포가 바짝 긴장한다. 허리띠 풀어놓고 마실 수 없다. 자연히 흡수율이 떨어진다. 술값만 더 든다. 마치 이런 거다. 부모님과 남편의 1200배 확대된 동공을 바르르 쳐다보며 마시는 것과 같다. 둘째, 평상시에는 만취해도 안전하게 서식지에 도착하지만 여행지 폭음은 호텔 옆방을 꽝꽝 두드리는 주폭질을 하거나 눈 뜨면 하늘이 반겨주는 상황을 만나기 십상이다. 지갑이 털리거나 섬으로 팔려갈지도 모른다. 셋째, 여행지 ‘섬싱’을 기대하는 이들이 있다. 술이 오작교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오해다. 연애 안 되는 ‘놈’은 뭘 마셔도 안 된다. 그럼 뭐하냐고? 아인슈타인도 놀라 자빠질 특이한 음식을 찾는다. 제주도 꽁치김밥 같은 것! 폭탄주 15잔보다 오감이 취한다.
박미향 기자 한겨레 문화부
물건 사기 VS 안 사기
이것도 절반, 저것도 절반
해외 쇼핑은 패션상품에서 기호식품으로 변화 중이다. 홍콩에 가면 (일본) 세이부백화점에서 청바지를 착한 가격에 사고, 이탈리아 로마에 가면 부드럽기 그지없는 가죽장갑, 가죽신발, 가죽벨트를 싸게 사는 즐거움이 있었다. 먹거리로 옮겨보니 색다른 흥겨움이 있다. 미국에 가면 코스트코다. 24병의 에일맥주 한 박스가 10달러고, 나파밸리산 와인 10달러짜리면 예술이다. 국내에서 먹어보기 힘든 술들을 저가에 맛보는 재미다. 프랑스 파리에 가면 올리브상점(Oliviers & co)과 마리아주 홍차가게를 간다. 진득진득한 발사믹 식초를 3만원에 산다. 뭘 발라먹어도 맛있다. 올리브는 맛보고 골라 산다. 홍차의 새로운 경지를 맛보인 마리아주 브랜드는 국내에서 구입 가능한 최하 가격의 절반에 살 수 있다. 수십 가지 종류의 홍차를 하나하나 냄새 맡아보는 것도 흥겹고, 희귀 선물용으로도 적당하다. 혹시 네스프레소 캡슐커피를 즐긴다면, 그것도 국내 구입가의 절반이다. 먹는 쾌감이 입고 바르는 거보다 좀더 세더라.
이성욱 씨네21북스 편집장
담배 한 보루면 됐지
이틀 동안 곰곰이 생각해봤다. 여행지에서 ‘질렀다’고 할 수 있는 물건이 있던가. 최근 제주도에선 면세 담배 한 보루, 지난해 일본 오키나와에선 젓가락과 튤립햄 캔 1개, 7일간 머물렀던 타이에서는… 아예 없네. 그런데 여행을 가면 꼭 무언가를 사야만 하나? 옷이나 화장품이야 서울에도 널렸고, 세일이나 온라인을 이용하면 비교하며 저렴한 가격에 살 수도 있고, 술이야 먹을 일 있을 때 사면 되잖아. 선물용 담배 한 보루면 차고 넘치지.
지리도 잘 모르는 외국 어딘가의 쇼핑센터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물건을 산단 말인가. 난 그런 곳을 돌아다닐 시간에 차라리 시장을 구경하는 것을 훨씬 좋아한다. 그 자체로 여행이 되고, 추억도 쌓이고, 맛있는 현지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사람 냄새 나는 그런 곳 말이다.
그 도시를 기념할 만하거나 그곳 아니면 절대 살 수 없는 물건이라면 또 모르겠다. 그래서 터키에서는 수피춤을 추는 인형을, 이탈리아 폼페이에서는 화산 폭발 전의 도시 모습이 담긴 책을 샀다. 지금은 뽀얀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어딘가에 처박혀 있지만 뭐 어때, 나에겐 명품 화장품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걸.
장인숙 씨네21 사업기획팀 팀장
사진 찍기 VS 안 찍기
나도 옛날엔 그런 사람이었다
일안반사식카메라(SLR)를 동생한테서 뺏었다. 그게 지금으로부터 어언 몇십 년 전(으로 생각되는 때) 회사 때려치고 긴 여행을 갈 때의 첫 번째 준비였다. 슬라이드 필름을 20통 사고, 고민하다 10통을 더 사고, 외국에선 비싸다 싶어 일반 필름도 샀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흑백 필름을 선물로 받았다. 배낭은 사진기와 필름으로 반이 찼다. 물론 매뉴얼 모드로 찍었다. 배터리를 아껴야 하니까. 여행 중 카메라는 손에 착 감겨갔다. 초점을 맞춰 렌즈를 돌리는 손이 빨라졌다. 터키 이스탄불 블루모스크를 찍으려고 현지 카메라숍에서 삼각대도 샀다. 가방이 무거워져 거금을 들여 필름을 항공편으로 부쳤다. 여행은 확실한 적자로 돌아섰다. 고국에서 받아본 결과는 참혹했다. 그래도 인화한 걸 스캔받아 사이트도 만들었다. 웬 정성이냐, 뭔 부지런이냐. 나도 옛날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려주는 게 그 엉망인 사진이다. 내 주위에는 죄다 나만 믿고 카메라를 안 갖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말한다. “나는 사진을 안 찍지만 보는 건 좋아해.” 나는 그들 추억에 고용된 노동자다.
구둘래 기자
그날을 현재로 새롭게 체험하다
바람 부는 제주도 바다가 아름답다. 친구들이 바다를 배경 삼아 즐거운 표정으로 사진 찍을 때, 나는 그들의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는 걸 바라본다. 그렇게 나는 사진을 찍지도, 사진에 찍히지도 않는다.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들 하지만 나는 믿는 구석이 있다. 내 의식은 바람 부는 제주도를 잊을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내 몸 밖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 어느 날, 바람 부는 서울 거리에서 까맣게 잊고 있던 제주도의 그날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 바다가, 바다 내음이, 친구들의 흩날리는 머리칼이 한꺼번에 내 의식 안으로 밀어닥치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바람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 불어오는 이 바람이 제주도에서 불었던 그 바람과 맞닿아 있다.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내게 불어오는 듯하다. 그렇게 그날의 감각이 모두 한순간 깨어난다. 사진을 찍어놓았다면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친구들은 사진을 보며 “그땐 참 좋았지”라고, 과거의 시간으로 그날을 추억한다. 하지만 나는 그날을 현재의 시간으로 새롭게 체험한다. 그 순간을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사진을 찍지 않는다.
정은주 기자
차려 입기 VS 거지같이
여행에서 치마의 용도
“너 그러고 가려고?” “응, 왜?” “아니, 그래도 쓰레빠는….” 모친께선 슬리퍼를 신고 해외여행을 가는 나를 이해 못했다. 5년 넘게 신어도 떨어질 줄 모르는 나이× 슬리퍼에 반바지, 책가방 크기의 백팩. 여행은 모름지기 가벼워야 한다. 동네에 마실 나온 듯, 시크하게 슬리퍼. 슬그머니 현지인화하기도 쉽다. 그래선지 중국이나 일본에 가면 현지인들이 길을 묻는다. 한국말로 나 중국말 몰라요, 여기 사람 아니에요, 말해도 어디 먼 지방에서 온 촌사람이려니 여기는 대륙의 풍모. 베이징 뒷골목에서 양갈비 골수를 빨며 옌징맥주를 마시는 ‘슬리퍼러’에게 바가지는 딴 나라 얘기다.
이런 나도 한번은 차려입고 일본 오키나와에 갔다. 9cm 힐에 아가씨 치마를 떨쳐입고 도쿄 나리타에서 환승하려는데, 입국심사대에서 정확한 한국말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보여달란다. 내 딴엔 ‘오피스레이디’풍이라 생각했는데 오 마이 갓, 불법체류 위험군으로 분류되고 말았다. 오키나와에 내리자마자 다시 슬리퍼로 갈아신었다. 시장 바닥을 헤매고, 현지 음식을 사먹고, 술을 마셨다. 게스트하우스 주인장이 ‘우민추’(오키나와 말로 ‘어부’, 오키나와 현지인을 뜻한다) 같단다. 에헤라, 바다는 파랗고 생선은 달고 취기 오른 목덜미로 부는 바람은 시원하다.
아가씨 치마는 다른 용도로 유용하게 사용했다. 오키나와에서 돌아오는 날 새벽, 긴장했는지 비행기 놓치는 꿈을 꾸다 깼다. 황급히 시계를 보았다. 이륙 40분 전. 30초 만에 짐을 들고 튀어나와 택시를 잡았다. 택시를 타고 보니 4시40분. 꿈 탓에 긴바늘, 짧은바늘을 거꾸로 읽은 것이었다. 나하공항에서 시간을 때우려는데 5시부터 6시까진 공항을 닫는다며 다 나가란다. 공항에서 쫓겨나자마자, 드라마인가? 갑자기 비가 내렸다. 캐리어를 깔고 앉아 졸고 있으려니 추웠다. 짐을 뒤지니 아가씨 치마가 나왔다. 도롱이처럼 뒤집어쓰고 공항 출입구에 기대어 1시간을 잤다. 내가 이걸 왜 입고 왔나 했더니, 이때 덮으려 했나 보다.
김송은 슬리퍼 여행자
직접예약 VS 패키지
공포에 휩싸인 클릭질
자유여행의 은밀한 매력은 공포다. 당신은 혈혈단신 공항에 표 사러 가는 아이다. ‘모르는’ 곳에서 여행자는 약자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 같은 존재다. 자유롭고 싶어 직접 예약하고 간다고? 선의에서 출발했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당신은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안 먹고 싶은 음식을 안 먹고, 자고 싶은 시간에 잘 것이다… 꿈 깨라. 헤매다 맛없는 점심을 먹을 확률이 더 크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이, 내 탓이오, 내 탓이오.
그런 공포가 분노의 클릭질을 유발한다. 공포에 휩싸인 어린이, 싸고 좋은 숙소와 맛있고 저렴한 음식을 찾아 가이드북보다 100배는 드넓은 인터넷 ‘후기’의 바다를 헤맨다. 국내외 예약 사이트 안에서 길을 잃는다. 이만큼 시간을 들였으니 여행사 니네보다 기필코 더 싸게 예약하고야 말리라, 오기가 치민다. 외국 소셜커머스 사이트에서 뷔페 쿠폰을 살 정도로 갔다면, 여행 가 있는 시간보다 여행 준비에 더 많은 시간을 들였다면, 당신은 이미 포로다. 떠나기 전에 지쳤다. 끝으로 모르면 고급 정보, 알면 저질 정보 공개. 일단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com)를 뒤져라. 수십만 건의 숙소 후기가 순위별로 반긴다. 찜하면 가격비교 사이트(hotelscombined.com 등)의 체크를 거쳐, 할인코드 수집에 나서라. 그러나 해보면 안다. 이 모든 것을 ‘무’로 돌릴 프로모션을 여행사는 자주 준비하고 있다. 그래도 바위를 밀어올리는 시시포스처럼, 눈알이 빨갛다. 그것은 분노? 밤샘?
신윤동욱 기자
자본주의 여행의 ‘집단지성’
이 글은 실화에 바탕한다. 2005년 여름 성수기, 친구 한 명은 남자친구와, 회사 동료는 가족과 함께 제주도로 떠났다. 친구는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숙박을 따로 예약했다. 회사 동료는 패키지로 갔다. 패키지에는 차도 포함됐다. 친구는 버스로 다녔다. 같은 날 서울에 도착한 그들은 상식을 깨부수는 이야기를 숫자로 들려주었으니, 3인 가족이 2인 연인보다 제반 비용이 적게 들었다는 것.
휴가를 위해 저가항공 사이트에 들어가본다. ‘3인이 모이면 2만원 할인, 더 많이 모이면 더 내려간다.’ 페이스북에 사람들은 글을 적는다. ‘저희 2인 출발인데, 그때 출발하시는 1인 안 계신가요?’ 이것이 자본주의 여행의 ‘집단지성’이다. ‘1박2일 단돈 얼마’ 놀라운 패키지의 내용 아래 ‘최소 2인 출발’이 적혀 있다. 노란 깃발을 따라가지 않더라도, 우리는 모니터 앞에서 여행자 연대를 꾸리고 있다. ‘예약’만 누르면 친절하게 전화가 오고 나는 뭘 먹을까만 생각하면 된다. 더 싼 패키지를 확인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도 ‘방황하지 않기’는 필요하다. 저가항공 사이트는 ‘모의 여행’의 대가 S기자가 알려주신 바다. 패키지는 동분서주한 여행사 직원의 분노의 클릭질 결과다. 그런 방대한 노력이 한 명만 위해서라면 안타깝지 않은가.
구둘래 기자
먹보 여행, 때깔도 좋다
국수만 후루룩
지도를 펼치고 눈으로 고속도로를 탄다. 서울에서 강원도 춘천~속초~고성을 찍고 오는 1박2일 코스다. 동해바다 가는 길이라고 오해들 마라. 바닷가니 물에 들어가 발 담그고 사진 좀 찍겠으나, 내 여행 준비물은 비키니가 아니다. 가방엔 카메라, 맛집 수첩, 만약을 대비한 소화제가 들었다.
국수라면 세끼를 내리 먹어도 좋은 국수 마니아인 내 여름휴가는 강원도 국수 여행이다. 춘천의 메밀막국수, 속초의 회냉면, 고성의 동치미막국수를 먹고 올 요량이다. 시간이 된다면(뱃속은 문제없다) 돌아오는 길에 경기도 포천의 김치말이국수, 가평의 잣국수까지 후루룩. 메밀의 고장 강원도엔 지역마다 기후 특색, 지리적 영향으로 만들어진 국수 종류가 다양하다.
식도락 여행의 재미는 늘 새롭다는 것이다. 여행지의 유명 미술관·유적지 등은 한 번 보면 다시 볼 필요성을 못 느끼나, 음식은 테마에 따라 지역을 새롭게 보는 계기를 마련한다. 부산의 향토음식, 제주도 진미여행 등 주제를 정해 떠나면 음식의 맛과 유래를 통해 지역의 특징을 쉽게 배울 수 있다. 여행지에서 그저 소문난 음식을 먹고 오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미각의 세계가 특별한 여행의 추억을 선물한다.
김미영 기자 한겨레 편집부
먹지 않으면, 가본 게 아니다
먹지 않으면, 가본 게 아니다
그러니까 지난해 5월 터키 이스탄불항에서 삐걱삐걱 소리를 내며 물 위에서 흔들리는 낡은 어선을 개조한 레스토랑에서 고등어 케밥을 먹지 않았다거나, 한국 원양어선에서 성추행을 겪은 인도네시아 선원을 만나러 지난 5월 찾아간 자카르타에서의 마지막 날 오후 3시30분 인도네시아 서민들과 섞여 팔딱거리는 생선과 문어를 골라 요리사에게 맡기고 몇 분 뒤 나온 그 짭짤한 생선구이와 문어볶음을 인도네시아 현지 맥주인 ‘빈탕’과 함께 맛보지 않았다고 상상해보라. 혹은 2010년 7월 말 일본 규슈의 해안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던 여름휴가 여행 마지막 날 나가사키에서 자며 ‘나가사키짬뽕’을 먹지 않고 그냥 돌아왔다거나, 우리나라에서 몇 안 되는 맥아공장을 취재하러 전북 전주를 찾았던 2008년의 어느 늦여름 오후 ‘왱이집’의 콩나물국밥을 먹지 않고 그냥 서울로 돌아왔다고 가정해보라. 어렵게 생각할 거 없고, 길게 말할 거 없다. 그 땅의 음식을 먹지 않으면, 여행한 게 아니다. 물론, 이스탄불에서 맛본 현지 증류주 ‘라키’를 한잔 들이켜자마자 ‘치약 섞은 소주’ 맛에 화들짝 놀라 기함한 실패의 경험도 비일비재하다. 그럼 어떤가. 그 실패조차 3매 원고 글감으로 써먹을 수 있는걸.
고나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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