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의 시를 위한 길'
-김기섭-
암벽화 끈을 조이며
이마에 붉은 스카프를 맨다.
소토왕골
시퍼런 물소리가,
물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우리가 오르고 있는 이 길은
동해의 푸른 바다가 생기고
바람이 생기고
우리가 처음인지 모른다
설악산 오면
가슴에 진한 병만 얻어 간다던
녀석의 얼굴이 생각났다
텐트를 두들기는 빗소리도
소토왕골을 가르는
하켄의 경쾌한 바람소리도
가슴 언저리 앙금처럼 뚜렷이 박히고
박힌 자리마다 바람처럼 돋아나는
에델바이스
우리는
인간의 언어를 다 동원해도
표현치 못할
한 편의 時를 보았다
그리고
아무도 모르는 비밀처럼 가슴 깊숙히
우리가 구름 위에 서 있다는 것을
태어난 처음 깨달았다.